매년마다 해외여행을 빠짐없이 가던 내가 코로나 이후로 해외여행을 못가게 되니, 여행이 너무 그리워서 지난 여행기라도 끄집어 내서 써볼까 한다. 사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다짐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현지인과 더 깊은 소통을 위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리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 여행기를 잘 다듬어서 써봐야지 하는 것이었다. 둘 다 마음만 있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여행기라도 제대로 정리해서 써봐야겠다. (영어공부를 위해 영어 필사책도 주문해놓긴 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역마살도 좀 달래고, 해외여행을 가지 못해 커져가는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2019년 겨울, 나는 캐나다 서부를 약 8일간 여행했다.
일정은 "밴쿠버-옐로나이프-캘거리-밴프"였고, 일정에서 보다시피 이 캐나다 여행의 방점은 옐로나이프 오로라를 보는 것이다. 옐로나이프를 가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내가 택한 방법은 국내선을 이용해서 밴쿠버에서 옐로나이프로 가는 것이었다. 사정이 있어서 한국에서 LA로 간 후에 밴쿠버로 이동했던 터라, 밴쿠버에서는 사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옐로나이프에 가기 전 이틀간 체력을 비축할 겸, 도시 구경을 소소하게 하기로 했다.
밴쿠버 하면 생각나는 것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그리고 어학연수. 우리나라 학생들이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면 밴쿠버로 많이 간다는 것을 들었었는데, 위 일정으로 캐나다 서부를 여행하고 나니 왜 학생들이 밴쿠버를 많이 선택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도시도 깨끗하고, 다문화 도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밴쿠버 주변으로 여행할 만한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놀기 좋은 도시! 사실 같은 해 여름, 나는 잠깐 어학연수 장소로 캐나다의 수도, 토론토를 선택했었는데, 캐나다 서부 여행 후에는 '아, 토론토보다는 밴쿠버를 선택했어야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착한 밴쿠버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이틀 내내 비가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밴쿠버의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온단다. 기온이 따뜻한 편이라 눈이 잘 내리지는 않지만, 로키산맥에 둘러쌓인 지형이라 습기를 머금은 해풍이 밴쿠버에 많은 비를 뿌린다고 한다. 반대로 여름의 밴쿠버는 대체로 서늘하고 습도도 높지 않아 여행하기에 좋다고 한다. 비가 온 것은 아쉽지만, 크리스마스 전이라 도시 전체가 크리스마스 느낌으로 꾸며져 있어서, 더없이 아름다웠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끼며, 밴쿠버의 명물 - 증기시계(Gas town steam clock)를 보러 갔다. 1977년에 세운 전세계 최초의 증기로 움직이는 시계인데, 매 정각마다 큰 휘슬소리와 증기가 함께 시간을 알려준다. 그리고 15분마다 작은 휘슬소리와 증기가 나온다. 증기는 지하의 중앙난방시스템에서 공급된다고 한다. 사실 시계가 그렇게 눈에 확 띄는 편은 아니지만, 이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항상 많아 그냥 지나치긴 어려울 것이다.

나는 밴쿠버의 증기시계의 낮 버전을 보진 못했지만, 밤에 어스러이 피어오르는 증기와 반짝이는 조명을 보는 것은 퍽이나 멋진 풍경이었다. 깜깜한 밤에 증기만 있었다면 스릴러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주광빛 예쁜 가로등과 나무에 장식한 꼬마전구들이 증기와 어우러져 너무나 감성적인 것이다. 뭔가 크리스마스 영화에 로맨틱한 커플이 팔짱을 끼고 걸어갈 것 같은 분위기랄까! 혹은 고전영화에서 마차가 지나갈 것 같은 풍경이랄까! 잠시 현실감과 동떨어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밴쿠버를 여행간다고 하면, 증기시계와 이 거리의 밤 풍경을 꼭 추천할 것이다.



근처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반짝이는 밴쿠버의 밤거리를 걸어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보았다.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많이 가보았었지만, 캐나다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밴쿠버 크리스마스 마켓은 배처럼 보이는 '캐나다 플레이스' 근처에 있었다. 여기에 오니 밴쿠버가 항구 도시임이 실감이 났다.

입장권을 끊고 크리스마스 마켓에 들어갔다. 빌딩 숲 사이에 크리스마스 마켓은 꽤 이색적이었다. 파리 등 유럽에서 가봤던 크리스마스 마켓과 비교하면 규모가 많이 작아 생각보다 볼 것이 없다 느껴졌지마, 이러한 도심 속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늦은 시간에도 사람은 꽤 많은 편이었다.


부스로 이루어진 크리스마스 마켓 안에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용품들을 팔고 있었다. 각종 비누, 향초, 트리 오너먼트, 호두까기 인형 등등 구매욕을 자극하는 예쁜 용품들이 많이 있었다.





너무 귀여운 크리스마스풍 목각 인형들.. 특히 저 썰매타고 있는 눈사람은 너무 귀여워서 정말 사고 싶었다.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사올걸 그랬나 보다. 몬트리올, 퀘백 등 캐나다 동부를 여행할 때도, 호두까기 인형들이 왜 이렇게 많지 하고 느꼈었는데, 서부에도 역시 많이 보인다. 왜 많은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밴쿠버 크리스마스 마켓 안에는 소세지, 핫도그, 츄로스, 음료 등등 간식을 파는 코너도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시간이 늦어 가게 문들을 닫고 있었다. 겨우 열어 있는 곳이 체코에서 먹어봤던! 체코의 전통빵, 뜨르들로를 구매했다. 나에게는 돌돌빵, 혹은 굴뚝빵이 더 익숙한 뜨르들로. 밀가루를 넓게 밀어, 밀대에 돌돌 말아 동그란 모양으로 구워내고, 그 위에 설탕 등으로 맛을 낸 기본적인 빵인데, 길거리 음식으로 가볍게 먹기에 제격이다.

이 크리스마스 마켓의 한가운데에는 붉은색 이층탑이 있는데, 1층에서는 와인 등 음료를 팔고 있다. 위에는 장식품만 있나 했더니, 자세히 보니 2층에도 사람이 있다.

이 밴쿠버 크리스마스 마켓의 음악을 책임지는 힙한 DJ 박스라고나 할까.. 자세히 보지 않고 넘어갔으면 몰랐을 뻔 했다.

밤이 되니 꽤나 쌀쌀해져, 따뜻한 뱅쇼를 한 잔 주문해 마시면서 마켓을 구경했다. 그제서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완성되는 기분이다. 역시, 크리스마스엔 따뜻한 뱅쇼지. 음료 한 잔에 행복감이 마구 차오른다. 유럽의 크리스마스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화려하진 않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밴쿠버의 크리스마스였다.

밴쿠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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